"가해 기업의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1심 무죄, 항소심 금고형 구형... 선고 공판 내년 1월 11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어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 7862명, 이중 폐암 진단자 206명

1994년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되기 시작한 이후 원인도 알지 못한 채 건강을 잃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게다가 출시 17년 후인 2011년에서야 사용자제 권고가 내려진 '최악의 참사'.

가습기살균제 피해규모 정밀 추산 연구/사회적참사 특별위원회
가습기살균제 피해규모 정밀 추산 연구/사회적참사 특별위원회

지난해 4월 '공기살인'이라는 영화로도 개봉된 바 있는 이 참사는 제품을 출시했던 기업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려하지 않았고, 증거 조작까지 시도했으며, 국가 역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부와 기업은 피해와 위험을 무시, 은폐, 축소, 책임 회피했으며, 적극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가습기살균제참사 종합보고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수많은 피해자들이 겪은 질환의 화학적 원인은 가습기살균제의 원료가 된 유해 화학물질이지만, 이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피해자를 구하지 못한 우리 사회 안전관리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9월 기준 가습기살균제 구제급여지급 대상자는 총 5176명이다.(가습기살균제피해종합지원센터) 피해자들은 2011년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을 피해구제와 배·보상을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아직도 가해 기업의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참사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가 잊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24일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SK 규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 1심과 동일형량 구형, 서울고등법원은 사건의 인과관계 인정해야"

남성욱 민변 환경보건위원회 변호사는 이 사건의 의의를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생산·유통 기업 관계자들의 형사책임을 묻는 재판이면서, 동시에 제품성분과 천식, 폐손상 등의 원인관계를 규명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피고인들에게 다시 무죄가 선고된다면, 피해자들은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향후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는 어렵게 될 것”이라며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는 형사사건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의 특수성과 현재까지 제출된 증거 등을 종합할 때, 사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산 반올림 활동가는 ”정부도 걸러내지 못한 제품 안전성을 시민들이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판단할 수 없다“라며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 가해기업들에게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강화된 화학안전 제도들을 윤석열 정부가 ‘킬러규제’로 몰아세우는 현실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1심 무죄, 항소심 금고형 구형... 선고 공판 내년 1월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메칠이소티아졸리논(MIT)을 원료로 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 및 판매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신세계이마트 등 가해기업 전직 임직원 13인에 대한 선고공판은 2024년 1월 11일에 열릴 예정이다.

지난 2021년 1월 1심에서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제품과 피해자들의 사망·상해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받은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와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 등은 전직 임직원의 항소심에서 검찰은 피고인 전원에게 금고형을 구형했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지난 2021년 1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는 모습. /사진=뉴시스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를 받는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10차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6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 부장판사, 안승훈·최문수 고법판사) 심리로 진행된 SK케미칼·애경산업·신세계이마트 전직 임직원 13명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모 이마트 상품본부장에게 원심 구형과 마찬가지로 각각 금고 5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모 SK케미칼 팀장 등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금고 3~5년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홍지호 SK케미칼 대표는 2002~2011년 유독 화학물질인 CMIT·MIT를 원료로 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 및 판매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는 CMIT 등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을 알고도 해당 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어요

항소심 결심공판이 있던 26일 피해자와 환경·시민사회단체는 가해기업 임직원에 대한 유죄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3년 가까이 진행되어 온 항소심 결심공판을 지켜보며, 이들은 피해자의 절절한 호소를 담아 가해기업들의 유죄를 촉구했다.

지난달 26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갈무리

또한 지난 1일 피해자와 환경·시민사회단체들은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다가오는 12월 중순에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10년의 폐암 투명생활 중인 피해자 조인재씨는 10년의 투병생활로 많이 지쳤다고 말한다. 항소심 공판이 진행된 3년의 시간 동안 피해자들은 여전히 “내 몸이 증거”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어요. 무해하고 안전하다기에 사용했는데 병을 얻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요. 호흡이 곤란해질 때는 주저앉고 싶을때가 많아요. 안전하다고 판매한건 기업인데, 우리는 왜 당해야만 하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피해자 채경선씨는 가습기살균제도 건강상의 효과를 기대한 점이 공통적이라고 다시금 강조하며, 제품의 원료물질을 구분해서 대응하는 가해기업의 변호전략을 비판했다. PHMG 원료에 기반한 옥시제품은 위해성이 입증되었지만,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CMIT 물질기반 제품들은 아직 문제를 단정할 수 없다는 식이라고.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다양한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조적 연구수단에 불과한 ‘동물실험을 통한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사건의 인과관계를 부정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같은 환경사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가해기업들과 관련 임직원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9월 정부는 총 599명에 대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구제급여 지급 여부, 피해등급 결정, 폐암 피해구제 계획 및 피해 인정 등을 심의 의결한 결과,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던 피해자 136명의 구제급여 지급 결정을 비롯해 ▲피해는 인정받았으나 피해등급을 결정받지 못했던 피해자 등 357명에 대한 피해등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는 7862명으로 이중 폐암을 진단받은 사람은 206명, 사망자 수는 1700여 명에 달한다.

포인트경제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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