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판매 개시…17년 후 '가습기 살균제' 사태
조직적 증거인멸 범행 정황…TF꾸려 자료 등 삭제
담당부처 공무원이 기업에 '증거인멸' 교사하기도
진상조사 시도 무마·자료 제출 불응 등 방해 공작

[제공=뉴시스]
권순정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 2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지난 2011년부터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의혹이 수사가 마무리됐다. 검찰은 지난 8년간 이 의혹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이유로 '조직적 증거인멸'을 지목했다.

2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이날 8개월에 걸친 가습기 살균제 의혹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SK케미칼·애경 관계자 등 총 34명의 피고인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서울대학교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연구노트 등 증거를 토대로 지난 1994년 가습기 살균제 최초 개발 단계서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결과는 안전성 검증을 위해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최종보고서가 나오기도 이전인 1994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판매가 개시됐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난 2011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미상의 중증 호흡곤란 폐 질환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가습기 살균제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016년 옥시·롯데마트 등 업계 관계자들이 기소됐지만,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3년이 흐른 2019년 또다시 수사가 개시됐고, 이날 최종 결과가 나왔다.

검찰은 이같이 가습기 살균제 의혹이 오랫동안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이유로 조직적인 증거인멸 범행을 지적했다.

검찰 조사결과 SK케미칼은 지난 2013년 정부부처 조사, 수사 및 소송, 언론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 TF(태스크포스)'를 조직한 혐의가 있다. TF는 안전성 부실 검증을 확인할 수 있는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를 숨기거나 관련 자료들을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애경산업의 경우 지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수사가 본격화되자 중앙연구소 직원 55명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교체하고, 이메일을 완전히 삭제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애경 또한 흡입독성 시험 관련 보고서 등을 숨기거나 삭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뤄진 재수사 과정에서도 증거인멸 범행이 포착됐다. 검찰은 이마트 품질관리담당 상무보가 지난 1월 압수수색 당일 가습기 살균제 담당 직원의 노트북을 숨긴 혐의점을 적용해 그를 재판에 넘겼다.

증거인멸 범행은 해당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공무원까지 가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월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 촉구 고발장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제공=뉴시스]
지난해 11월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 촉구 고발장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뉴시스]

검찰은 지난 2017년부터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가 애경 측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 등을 제공받은 뒤 국정감사 자료나 가습기 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보고서 등 각종 내부 자료를 제공한 정황을 확인했다.

특히 최씨는 지난 2018년 11월 관련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애경 측에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들을 철저히 삭제하라'고 전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담당부처 공무원이 대상 기업에 증거인멸 범행을 직접 교사한 것이다.

증거인멸 범행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의혹 진상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범행도 검찰에 적발됐다.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양모씨는 애경 측으로부터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대표 등을 조사하는 것을 무마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수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양씨는 재판에서 "돈은 받았지만, 무마 대가는 아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그가 진상조사 시도를 무마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SK케미칼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월 환경부가 진행한 현장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관련 유해성 연구보고서를 숨기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5월 두 법인과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가습기특별법 위반 혐의를 처음으로 적용한 사례다. 해당 업체가 환경부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결과가 빚어지게 된 셈이다.

검찰은 이같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진상규명 방해 활동 및 증거인멸 범행으로 수사에 한계가 있었음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업체 내에 있는 자료들 대부분이 삭제·인멸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포인트경제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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