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자살 예방 프로젝트'
항우울제 등장과 '자살' 용어 표현
"자살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편안해야"
“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실패를 성공의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보는 것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 사실 이 나라는 한때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구글 갈무리

핀란드는 계절적으로 매우 어둡고 긴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하고 일부 지역은 해가 거의 뜨지 않아 하루 20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기도 한다. 이는 자살률을 높일 수 있다고 알려진 계절적 정서 장애(SAD)인 일명 겨울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2019년에 발표된 OECD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핀란드인의 약 19%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는 유럽연합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에 대한 가장 흔한 질병이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며 이는 자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22일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핀란드 보건복지연구소(THL) 티모 파르토넨(Timo Partonen)은 "1990년은 자살 사망률과 관련해 핀란드 역사상 가장 암울한 한 해였다"고 말했다.

그해 핀란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512명으로 당시 인구는 500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기준 핀란드 인구 560만 명 중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740명으로 감소했다.

1751년~2021년까지 핀란드의 자살 사망률 /핀란드 보건복지연구원

핀란드가 자살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많은 생명을 구하게 된 방법은 무엇일까?

'국가 자살 예방 프로젝트'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되는 계획 중에는 '국가 자살 예방 프로젝트'가 있다. 1986~1996년 사이에 진행됐는데 자살 사망률을 13% 낮추는 데 기여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우울 장애 치료 개선, 신속한 조기 발견, 더 나은 치료법의 출현 등으로 평가된다.

또한 알코올 남용, 성격 장애를 포함한 기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모범 사례 지침도 소개됐다. 파르토넨은 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많은 환자들이 여전히 도움을 구하지 않거나 치료가 중단되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10년에 걸친 핀란드의 '국가 자살 예방 프로그램' 프로젝트의 평가와 발표된 결론 /미국심리학회 갈무리

THL은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진행되는 새로운 예방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 몇 년간 정체되었던 수치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THL의 목표는 부분적으로 대중, 언론인 및 의료 제공자를 위한 교육을 개선함으로써 자살률을 더욱 낮추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 건수는 겨울인 12월, 1월, 2월에 가장 낮고,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봄과 초여름에 정점에 도달하는 경향이 있다

기온이나 빛에 노출되는 형태의 환경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고, 사람들은 그들이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면, 보통 봄이 그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파르토넨은 이러한 현상이 보편적이며 남반구와 북반구, 동부와 서부 문화에서 유사한 패턴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우울증이 있으면 햇빛에 대한 노출이 증가함에 따라 뇌와 신체가 다르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불면증으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더 불안해지기 때문에 그 수준이 높아지고 우울증이 악화될 수도 있다”

자살률이 높았던 당시 핀란드에서 과음 문화가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음주량이 감소한 것과 동일한 비율로 자살률도 감소했으며, 이제 특히 청소년들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살 또한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취약한 집단에는 젊은 여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14~25세 사이의 자살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중년 남성의 시도 비율이 가장 높지만 전체 구성은 여성 쪽으로 크게 이동했다. 핀란드에서 90년대에는 전체 자살의 80%가 남성이었으나 현재 25세 이하에서 60%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소셜 미디어가 외로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항우울제 등장과 '자살' 용어 표현

90년대에 항우울제가 등장하면서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우울증이 자살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간주되었지만 이제 이전의 자살 시도가 위험 증가의 가장 좋은 지표다.

사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자살이라는 단어는 금기시 됐다. 출판물에도 기사에도 사용은 금기 시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과 같은 단어로 대체해야 했다.

1972년 헬싱키 미엘리의 한 자살예방센터는 이름을 '위기예방센터'로 변경해야 했다. 핀란드의 많은 노인들에게 자살은 여전히 말하기 어려운 단어이며, 그걸 말하는 순간 그것이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살에 대해 더 많은 진전을 이루려면 의료 서비스 제공자로부터 학생, 모든 사람들이 자살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편안해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스크린 중심의 21세기 생활 속에서 사회는 자살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점점 좋아지고 있을지 아니면 나빠지고 있을지에 대해서 핀란드는 주저 없이 “더 좋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우리는 핀란드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자살을 예방하고 있다"

세계 행복 보고서

지난해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 핀란드(7804점)는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5951점으로 지난해보다 2순위 높아진 57위다. 인근 국가들 중에는 대만이 6535점으로 27위, 일본이 6129점으로 47위, 중국이 5818점으로 64위를 차지했다.

2023년 한국의 행복수준 및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 /2023 UN세계행복보고서 갈무리

돈이 많아야만 행복한 것도 아니다.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 등은 상위 10위권 안에 든 적이 없다고 한다. 보고서에서는 국가 내 행복 수준이 전반적으로 평등할수록 국민들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에 대한 지지, 친 사회적 인식, 정부의 청렴도, 사회적 관계 형성 등이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국민은 정부의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전 세계에서 부패가 없는 깨끗한 나라로도 유명하다. 정부나 다른 이들의 이타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높을수록 더 큰 행복감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결속력과 관용, 국민에 대한 적절한 보호가 이뤄진다는 의식 등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공공 보건의료 혜택, 양질의 교육 환경, 충분한 유급 휴가 등은 사람의 삶을 균형 있고 안정되도록 돕는다. 핀란드를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은 국민들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지만 대부분이 기꺼이 많은 세금을 납부한다. 이는 실제 국민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데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핀란드의 고유 정서 '시수(Sisu)'로 인해 내적인 강인함, 어려움이 생겼다고 포기하지 않는 것 등의 문화가 삶의 방식에 녹아들어 있어 실패를 대부분 성공의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보는 마인드가 또한 그들을 불행으로 가지 않도록 돕는 것이라 볼 수 있다.

OECD 연령표준화 자살률 /참여연대 갈무리

대한민국의 2022년 자살사망자 수는 1만2906명으로 1일 평균 자살자 수는 35.4명이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2명이다. OECD 38개국 평균 자살률은 11.1명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자살률이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 감소추세로 가고 있기는 하다.

우리 정부도 노력은 하고 있다. 2022년 자살예방법 개정법이 시행되고 자살시도자 및 그 가족을 위한 원스톱서비스 제공되고 있다.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년)’을 통해 생명안전망 구축, 자살위험요인 감소, 사후관리 강화, 대상자 맞춤형 자살예방, 효율적 자살예방 추진 기반 강화 등 5대 추진전략을 중심으로 세부 과제를 구성했다.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운영되고 지원되어 효과적으로 자살률을 낮추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함께 하는 손 /사진=feepik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지속해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계획과 수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도 스트레스 관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나를 돌보고 주변을 살필 수 있고, 신뢰하고 안전한 사회, 존중과 돌봄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포인트경제 김수철 기자

저작권자 © 포인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