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유사성∙동일 관심사∙생활 환경∙습관 등의 영향
노화도 건강도 독립적인 것이 아닌 부부와 가족이 함께 겪는 것

많은 연구에서 생활과 감정을 공유하는 커플이 질병과 건강까지 공유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소득 수준을 고려한 '커플 고혈압'도 이에 해당한다는 결과가 나와 생활환경과 습관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웨딩 커플 / 출처 - 프리픽
웨딩 커플 / 출처 - 프리픽

지난 6일 미국심장협회(AHA)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세계 3만 4천 쌍의 이성애 커플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남편과 아내 모두 고혈압을 앓고 있는 '커플 고혈압'이 높게 나타났다.

고혈압은 이전에도 '부부의 동일한 질병 위험'을 다루는 연구에서 다뤄진 바 있지만 고소득 국가와 중간 소득 국가의 부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커플 고혈압' 비율은 영국에서 약 47%, 미국 38%, 중국 21%, 인도 20% 등으로 보고됐으며 부부의 소득, 나이, 교육 수준, 결혼 기간은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부부의 동일한 질병 위험은 전부터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여러 조사에서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지난 2002년 영국의학저널 BMJ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당뇨병, 고혈압, 허혈성 심장 질환, 뇌졸중, 고지혈증, 소화성 궤양 질환, 천식 또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파트너는 질병에 걸릴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천식과 우울증, 소화성 궤양 질환에 걸릴 위험은 최소 70%나 증가했다.

노년 커플 / 출처 - 프리픽
노년 커플 / 출처 - 프리픽

2016년 미국 미디어 NPR은 '노화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들을 소개했다.

미국의 1568명의 노년 부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사망률을 예측하는 주요 변수인 '신장 기능과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부부 사이 유사성을 지녔으며 함께 보낸 시간이 오래될수록 영향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울한 파트너가 집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면 다른 사람도 집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느낄 수 있어 신체활동 감소로 건강문제가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우울증 악화부터 당뇨병까지 일상적인 기능을 제한할 수 있는 질병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지난 2020년 하버드대학 소식지에는 부부의 80%가 심장병 위험 요소와 행동을 공유한다는 연구를 실었다. 5000쌍 이상의 커플 중 둘 모두 심혈관 건강이 위험 분류에 속한 커플은 79%에 달했으며, 이는 흡연이나 해로운 식습관, 저조한 신체활동 등 상대의 행동 패턴과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적 원인도 있지만 환경 변화로 극복 가능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의 원인으로 '동류교배'(assertive mating)를 꼽기도 한다. 동류교배는 비슷한 사회 계층, 교육 배경, 인종, 체중을 가진 사람끼리 끌리는 것으로, 배우자가 유전적으로 유사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반대개념인 '이류교배'(Disassortative mating)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낮다.

실제로 2021년 일본의 도호쿠대학에서 일본 5391쌍, 네덜란드 28265쌍의 커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부의 혈압, 콜레스테롤 및 중성지방 수치가 유사했고, 고혈압과 당뇨병, 대사증후군 등 관련 질환도 발견됐다. 이 커플들은 흡연, 음주, 체중, 복부둘레, 체질량지수 등 생활습관과 신체적 특성이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 이대로 부부가 질병 위험을 공유하며 생긴 대로 살아야 할까?

나 혼자를 위한 것보다 가족 전체의 건강을 위한 변화

하버드대학 자료에서는 한 파트너가 금연, 체중감량, 신체활동 증가, 식단 개선 등을 시작했을 때 다른 파트너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생활 습관은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쉬워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 함께하는 변화는 '시작도 포기도'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커플 고혈압' 관련해서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 공중보건대학 전염병학 및 생물통계학과의 베서니 배로네 깁스 학과장은 "활동적인 생활과 스트레스 감소, 건강한 식단 섭취 등의 생활 방식 변화로 혈압을 낮출 수 있지만 파트너와 함께 변화해야 지속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생활 변화의 시작은 '나 혼자의 건강이 아닌 부부와 가족 전체의 건강'이라는 자각이 먼저가 아닐까.

포인트경제 박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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