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 요인에 따라 유전 발현이 달라지는 후생유전체, '이전 기억'이 영향
배아 세포의 후생유전체가 자연적으로 재설정되는 방식을 모방 - 이전 기억 지우기
과거 정체성 잊은 세포가 더 안정적 기능, 합병증 위험 줄여 안전

새로운 자아로 재프로그래밍하기 위해 기억을 초기화한다? 이것은 SF영화 스토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호주 연구팀이 줄기세포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포의 이전 기억을 지우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연구로 줄기세포가 다른 세포로 전환될 때의 예측 가능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손을 뻗은 사람 / 사진 출처 -프리픽, ⓒ포인트경제CG
손을 뻗은 사람 / 사진 출처 -프리픽, ⓒ포인트경제CG

줄기세포는 체내에서 특화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세포를 뜻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인간 세포는 60-70회 정도 분열하고 나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노화단계에 접어든다. 분열을 중단한 노화 세포는 노인성 질환과 만성질환 발생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줄기세포는 분열을 통해 조직항상성 유지나 재생 등에 있어 세포의 공급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손상된 조직의 치유뿐 아니라 노인성 질환의 개선 효과에도 기대를 모았다. 배양 방법으로는 윤리적 문제와 실질적 한계에 봉착한 배아줄기세포를 대신해서 피부나 다른 곳의 성체 체세포를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 세포)로 바꾸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iPS 세포는 자기 재생 능력과 심장 근세포로의 분화 능력 등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재프로그래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포들은 예전 세포 종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 다른 유형의 세포로 전환하려고 할 때 예측하기 어렵거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지난 16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Transient naive reprogramming corrects hiPS cells functionally and epigenetically'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연구에서 호주 연구팀은 줄기세포에 관련한 재생 의학의 오랜 문제를 해결했다.

인간의 순진한 리프로그래밍과 프라이밍된 리프로그래밍 동안 DNA 메틸화 변화의 뚜렷한 궤적 / 사진 출처 - nature
인간의 순진한 리프로그래밍과 프라이밍된 리프로그래밍 동안 DNA 메틸화 변화의 뚜렷한 궤적 / 사진 출처 - nature

"기존의 재프로그래밍 과정의 지속적인 문제는 iPS 세포가 다른 후생유전학적 이상뿐만 아니라 원래의 체세포 상태에 대한 후생유전학적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연구를 이끈 해리퍼킨스 의학 연구소의 라이언 리스터(Ryan Lister) 교수가 말했다.

후생유전(후성유전)은 타고난 DNA의 유전정보는 그대로지만 환경이나 습관 등 외적 요인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 상태가 달라지고 후대까지 대물림되는 것을 뜻한다. 세포의 후생유전체는 각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끄는지를 제어하여 무슨 세포 유형이 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때 '기억'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피부 세포로 만들어진 iPS 세포를 췌장 세포로 전환하려고 했을 때, '피부 세포였던 기억'을 일부 가지고 있다면 췌장 세포로 전환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한 전환되었다 해도 실제 췌장 세포만큼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모나쉬 대학의 해부학 및 발달 생물학과 교수 호세 폴로(Jose Polo) 교수는 '배아 세포의 후생유전체가 자연적으로 재설정되는 방식을 모방하여 재설정 단계를 도입했다'라고 설명했다.

배아가 자궁에 착상되기 전인 초기 발달 단계에서 정자와 난자 세포로부터 물려받은 후성 유전적 흔적은 본질적으로 지워진다. 이 리셋을 통해 초기 배아 세포는 성장하고 발달함에 따라 어떤 세포 유형이든 될 수 있다.

연구팀은 배아 세포를 모방한 재설정 단계를 거친 세포(TNT-iPS)가 기존 생산된 iPS 세포보다 분자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인간의 배아줄기세포(ESC)와 훨씬 더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리퍼킨스 의학 연구소의 세포 생물학자 다니엘 포페(Daniel Poppe) 박사는 'TNT-iPS 세포가 표준 방법으로 생산된 iPS 세포보다 뉴런 전구 세포와 같은 다른 많은 세포로 더 잘 분화되었다'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처럼 iPS 세포가 과거의 정체성을 잊고 새로운 유형의 세포로 더 확실하게 분화한다면 당뇨 환자를 위한 인슐린 생산 세포나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신경 세포와 같이 특정 세포를 만드는 데 더 안정적일 수 있다. 또한 iPS 세포를 의료 치료에 사용할 때 더 돌발 행동이나 합병증의 위험이 줄어 안전한 사용이 가능하다.

리스터 교수는 이번 연구가 세포 치료 및 생의학 연구의 새로운 기준을 확립하고 그 발전을 크게 앞당길 것이라 기대했다.

포인트경제 박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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