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관하는 나의 장례식으로 정리와 감사의 시간 가져
영국 린다 윌리엄스 말기 암 판정 후 자신만의 파티 계획하고 진행
서길수 교수 그동안 3번의 '살아서 하는 장례식' 치러
지난해 별세한 안토니오 이노키는 2017년에 이별 파티를 하기도

죽음의 순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특히 남아있는 사람들의 추모만으로 채워지는 지금의 장례식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의 인생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자신이 함께하는 정리와 감사의 시간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가 살아있는 동안 그런 자리, 그러니까 내가 주관하는 나의 장례식을 마련하는 모습은 특별한 영감을 준다.

영국의 하이위컴(High Wycombe)에 사는 76세의 린다 윌리엄스(Linda Williams)는 1년 전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다. 보통 말기 암 판정을 받는다면 여러 가지 감정이 엄습해 올 텐데 린다 여사는 조금 달랐다. 진단을 받은 후 장례식을 대신할 자신만의 파티와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계획했다.

린다 윌리엄스 여사가 주관한 자신의 파티 / BBC 갈무리
린다 윌리엄스 여사가 주관한 자신의 파티 / BBC 갈무리

BBC와의 인터뷰에서 린다 여사는 "나는 장례식을 싫어하고 친구들과 밤새 춤추기를 원한다"라며 "나는 좋은 장례식을 가본 적이 없고 비참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축하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그 시작으로 그녀는 지난해 10월 1940년대 영국 본토 항공전을 테마로 파티를 열었다. 부모님 모두 영국 공군(Royal Air Force)에 계셨고, 왕립 공군기지가 있는 월터스 애쉬(Walters Ash) 근처에서 자랐으며, 당시의 비행기 스핏파이어(Spitfires)를 동경했다는 것을 알고 보면 충분히 공감 가는 선택이다.

린다 여사가 자신의 부재를 대비해 만들었다는 등신대 / BBC 갈무리
린다 여사가 자신의 부재를 대비해 만들었다는 등신대 / BBC 갈무리

이후 새로운 이벤트를 열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최근 다시금 파티를 열었다. 혹여 파티 당일 자신이 세상에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등신대까지 준비한 데서 다시 한번 그녀의 진심이 선명히 느껴지기도 한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과 함께한 파티는 저녁 7시 반에 시작해서 새벽 1시까지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파티에 참석한 조 옥슬레이드(Jo Oxlade)는 "린다는 처음부터 그녀가 여기에 있든 없든 이 파티가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했다"라고 전한다.

고구려연구소의 서길수 교수는 2019년 12월 자신의 첫 '살아서 하는 장례식'을 치렀다. 축사·축가·서길수 교수의 장례식 강의·참석자들과의 대화 등으로 이루어진 이 장례식에서 우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서길수 고구리·고리연구소 이사장이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동북공정 백서' 발표대회를 하고 있다.
서길수 고구리·고리연구소 이사장이 지난해 2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동북공정 백서' 발표대회를 하고 있다.

당시 서 교수는 "늘 마음에 죽음을 새기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죽은 뒤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살아서 조문 온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는 게 좋겠다'라고 생각해왔다"라며 취지를 설명했다.

이후 2021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두 번째 '살아서 하는 장례식'을 치렀고, 지난해 12월에는 가족과 지인 80여 명을 초대한 세 번째 '살아서 하는 장례식'을 진행했다. 출판기념회와 겸하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점심을 대접하지만, 조의금이나 꽃다발은 받지 않는다.

이와 함께 서 교수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연명치료를 하지 말고, 숨을 거두면 별도의 장례식 없이 화장터와 연락이 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화장해 줄 것을 당부해 놓았다. 가급적 24시간 안에 하되 주검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조용히 떠나길 바란다는 것이다.

2017년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별 파티 / 마이니치신문 갈무리
2017년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별 파티 / 마이니치신문 갈무리

지난해 10월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안토니오 이노키가 별세했다. 난치병인 '전신성 아밀로이드증'을 겪다가 심부전으로 떠났지만, 그는 2017년에 이미 료고쿠 체육관에서 이별 파티(생전장, 生前葬)를 한 바 있다.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감정을 나누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는데는 다행이고 일견 부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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