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코로나19 등 국가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온 경험있다"
민간 의료인력 긴급 채용에 31억원을 추가 투입
질환별 전문병원으로 우선 이송하는 비상대응체계 확대
윤 대통령,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 적극 활용
법적 근거 없이 관행처럼 운영되던 PA가 양성화 수순 전망

정부와 의과대학 학생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행동이 확산되면서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지역의 주요 병원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응에 나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지역 주요 병원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포인트경제)

8일 서울 시청 기획상황실에서 열린 서울지역 주요 병원장 간담회에서 "서울의 주요 상급 및 종합병원들은 메르스,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 때마다 서울시와 적극 협력해 시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가적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온 경험이 있다"며 "어떤 경우라도 위급한 환자가 치료받지 못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은 없어야 하는 만큼, 중증·응급 환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 기능을 최대한 유지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오 시장은 진료 파행을 막기 위해 민간 의료인력 긴급 채용에 31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하고 서울시는 응급환자 분산을 위해 질환별 전문병원으로 우선 이송하는 비상대응체계도 확대했다. 앞서 시는 서울의료원, 보라매병원, 은평병원 등 3개 시립병원에 의료진 45명 충원을 목표로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서울시는 의료 현장을 지키는 전문의들이 과도한 업무로 번아웃에 내몰리는 상황을 막고, 원활한 병원 운영을 위해 당직의·입원 전담의 등을 긴급 채용하도록 예산을 지원한다.

오 시장은 이날 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면서 8개 시립병원, 25개 구 보건소 등 공공의료 진료를 연장하고 응급실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등 총력 대응하고 있다고 시의 비상 의료 대책을 소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지역 주요 병원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포인트경제)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이대목동병원, 고대안암병원, 건국대병원, 경희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장과 서울의료원, 여의도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보라매병원, 강동성심병원, 성애병원, 순천향대서울병원, 에이치플러스양지병원, 중앙보훈병원, 강남성심병원, 강동경희대병원, 한일병원 등 종합병원의 병원장들이 참석했다. 수도권 대형 상급종합병원인 이른바 '빅5'(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중에서는 2곳(삼성서울·서울성모)이 포함됐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수련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없이도 대형병원 중환자 진료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진료보조인력(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거부권을 행사했던 '간호법' 제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호법은 지난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바 있다.

8일 대한간호협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65만 간호인은 새로운 간호법 제정으로 누구나 안전하고 올바르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 권익을 지켜나가겠다”라며 새 간호법 추진을 국회와 정부에 공식 요청하고 나섰다.

대규모 전공의 이탈한 의료 최일선에서 법적 근거가 미약한 PA 간호사들이 그 공백을 채우는 상황에서 정부가 법적 보호와 보상까지 약속함에 따라 그간 법적 근거 없이 관행처럼 운영되던 PA가 양성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8일 간호사가 응급환자에 대해서는 심폐소생술이나 약물투여 등 기존 의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보호와 보상은 강화하는 골자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시행한다. 일선 수련병원 등 대형병원에서 간호사 활용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이다.

정부가 일선 병원에 내린 지침 기준에 따르면 대법원 판례로 명시된 금지 행위, 예를 들면 ▲자궁질도말세포병리검사 검체 채취 ▲사망진단 ▲의사가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은 의료행위 등은 할 수 없다. 가령 대리수술이나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가지 업무는 간호사가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대신 회진 형태의 입원환자 상태 파악 업무나 심전도·초음파검사, 코로나19 검사, 응급상황에서의 심폐소생술 및 약물 투여는 허용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포인트경제)

정부가 약 1만명에 달하는 전공의 공백을 간호사로 버티는 전략을 쓰는 상황이 되자 의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제대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P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인 면허범위가 무너지면서 의료 현장은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수술실에서 의사의 수술을 보조하는 PA 제도가 합법이지만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그간 법적 근거가 없어 관행적으로 PA 간호사 제도가 운영 돼온 만큼 불법진료에 내몰리거나 소송의 위험에 놓였다. 이번 전공의 이탈을 경험한 만큼 향후 국내에서도 PA 간호사가 합법화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될 전망이다.

포인트경제 이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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