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의 수도'라 불리는 '그라스', 가뭄으로 꽃 수확량 절반 가까이 줄고 품질도 저하
아프리카의 바닐라와 인도네시아의 파출리도 기후 변화로 생산에 타격
기후 변화는 향수 산업의 근간을 흔들어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환경오염, 포장재료 폐기물 문제도 개선되어야

기후 위기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산업은 없다. 향수 산업도 마찬가지다.

향수를 만드는 데는 다양한 꽃과 허브를 필요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품종이나 특정 지역의 원료를 고수하기도 하는데 기후 위기로 인한 재배환경의 변화는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

'향수의 수도'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그라스(Grasse)'는 17세기부터 향기로운 꽃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지역이다. 지중해 부근의 기후와 토양을 바탕으로 훌륭한 장미·튜베로즈·라벤더·재스민 등을 생산하는데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에서 재배한 재스민이 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은 이 지역 품질의 간접적인 설명이 될 수 있겠다.

재스민을 수확하는 농부 / 가디언 갈무리
재스민을 수확하는 농부 / 가디언 갈무리

여기에 1921년 등장하며 고급 향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샤넬 넘버5(Chanel N°5)'는 지금까지 그라스 재스민 만을 사용해오고 있다는 것과 유네스코가 2018년에 이곳의 향수 문화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사실은 이 지역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몇 년간 이 지역의 날씨가 예전과 달라지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극심한 가뭄은 꽃들의 수확량을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만들었고, 품질도 떨어뜨렸다. 지역 농부들이 자구책으로 물 제한을 시행했지만 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라스만의 문제도 아니다.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라는 바닐라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폭염으로 큰 타격을 받았으며, 2017년 마다가스카르에서 발생한 사이클론은 농작물의 30%를 파괴하면서 가격 폭등을 가져오기도 했다.

파촐리 수확 모습 / 코스메틱 비즈니스 갈무리
파출리 수확 모습 / 코스메틱 비즈니스 갈무리

파출리는 향수에 사용되는 허브의 일종인데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 섬에서 주로 생산된다. 그런데 이곳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건조하거나 습한 극단적인 날씨가 산발적으로 이어져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향기: 향기의 자연사(Scent: A Natural History of Fragrance)〉의 저자이자 조향사인 앨리스 버논 펄스틴(Elise Vernon Pearlstine)은 "와인 감정가가 떼루아(토양)를 다루는 것처럼 재스민, 장미, 라벤더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라며 "날씨, 토양, 고도 모두가 차이를 만든다"라고 말한다. 와인과 향수가 가지고 있는 섬세함이라는 공통점에 기후의 영향에도 민감하다는 부분을 짚는 것이다.

결국 일련의 과정과 평가를 보면 결국 기후 변화가 향수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론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대처가 향수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향수가 화학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지목된다.

화학물질은 생산·운송·사용·폐기 등의 과정에서 환경 오염물질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부 성분이 수질 오염이나 수중 생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도시 대기 오염원인 생활용품의 배출 / 미국국립해양대기청 갈무리
주요 도시 대기 오염원인 생활용품의 배출 / 미국국립해양대기청 갈무리

지난 2018년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A) 지구과학협력연구소(CIRES) 연구진은 향수·페인트·접착제·잉크 등과 같은 소비재에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자동차에 못지않은 대기오염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VOCs는 햇빛과 반응해 스모그나 오존을 일으킨다든지 대기에서 다른 화학물질과 결합해 미세먼지를 발생시킨다.

향수 제품의 생산 과정과 포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도 향수 산업이 늘 지적받는 문제다. 향수 제품은 유리병이나 플라스틱병, 종이·플라스틱 상자 등 많은 포장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재료들이 생산과 사용을 거쳐 폐기되면서 만드는 폐기물들은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는 향수 산업이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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