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라벨과 병 모양은 전통적으로 와인에 대한 기본 정보와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름과 함께 와인의 빈티지와 와이너리, 품종, 지역 등을 유추하는데 재료가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와인 선택에 참고가 된다.

그런데 와인의 저변이 넓어지고 소위 신대륙 와인의 성장 및 개성에 따른 경쟁이 붙으면서 와인병의 모양에도 색다른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와인병의 양각(embossing)이다. 전통적인 와인들의 경우 보통 라벨 위에 양각이 위치하며 가문이나 와이너리의 전통문양·건물·이름 등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지 않은 독특한 와인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와인을 마실 때 눈으로 색상을 감상하는 것은 중요한 시각적 즐거움이다. 어쩌면 이제는 거기에 더해 병의 도드라진 무늬에 한 번 더 눈길을 주는 것으로 또 다른 재미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자전거를 새긴 와인

칠레에 위치한 와이너리 '코노수르(Cono Sur)'의 포도밭 내에서는 모든 직원이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로 이동한다. 바로 환경을 위한 조치다.

와이너리는 이런 수고로움을 함께하는 근로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지난 2018년부터 '코노수르 비시클레타(Cono Sur Bicicleta)' 시리즈의 병에 자전거 양각을 새기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자신들의 상징성과 고급스러움, 품질감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도 따른다.

코노수르 비시클레타 시리즈 / 코노수르 홈페이지 갈무리
코노수르 비시클레타 시리즈 / 코노수르 홈페이지 갈무리

코노수르는 이뿐만 아니라 포도밭에 화학적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거위를 풀어놓아 벌레를 제거하는 친환경 농업법으로도 각광을 받는다.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와이너리로는 세계 최초로 탄소 배출 0% 인증(Carbon Neutral)을 받기도 했다.

◇ 인물이 양각되어 있는 와인

올해로 탄생 210주년을 맞이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이탈리아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겠지만 그의 얼굴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와인도 있다.

트레 디 테레 베르디아네 엑스트라 드라이 스푸만테(스파클링) / vino.com 갈무리
트레 디 테레 베르디아네 엑스트라 드라이 스푸만테(스파클링) / vino.com 갈무리

베르디가 태어난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 주(州)에 위치한 '칸티네 체치(Cantine Ceci)'에서 생산하는 '트레 디 테레 베르디아네(Tre di Terre Verdiane)'가 그것이다. 이 와인은 특별한 라벨 없이 와인병 전면에 어깨를 포함한 베르디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트레 디 테레 베르디아네는 스파클링 계열로 말바시아(Malvasia)·피노 네로(Pinot Nero, 피노누아의 이탈리아어)·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품종을 섞어 만든 블렌딩 와인이다. 여기에는 피아노·하프·바이올린의 독특한 하모니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소개하는데, 음악적인 이미지를 한층 부각시키는 마케팅이라고 보면 되겠다.

◇ 남다른 바닥을 가진 와인

미국의 천재 와인 메이커 데이브 피니(David Swift Phinney)가 선보이는 와인은 완성도 못지않게 파격적인 와인 라벨로도 각광을 받는다. 그의 오린 스위프트 셀러(Orin Swift Cellars, OSC)에서 생산하는 와인들의 라벨을 처음 보면 이름이나 품종에 대한 힌트가 부족해 불친절하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며 충분히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OSC 와인 라인업 / OSC 홈페이지 갈무리
OSC 와인 라인업 / OSC 홈페이지 갈무리

이곳 제품 중 하나이자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제목이기도 한 '빠삐용(Papillon)'은 프랑스어로 '나비(Butterfly)'를 뜻한다. 와인 라벨을 보면 거친 손위로 빠삐용이 써져 있는데 실제 포도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손에 글자를 적고 찍은 사진이다. 재밌는 것은 와인병의 바닥에 나비 문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는 점. 와인을 다 마시면 보다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빠삐용 와인 바닥에 양각되어 있는 나비 그림 / 링크드인(Beth Haiken) 갈무리
빠삐용 와인 바닥에 양각되어 있는 나비 그림 / 링크드인(Beth Haiken) 갈무리

참고로 빠삐용이라는 이름은 불어를 배우고 있던 피니의 딸이 포도밭에서 나비를 보고 외친 말을 가져다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이름과 거친 느낌의 라벨이 주는 묘한 이미지가 와인의 느낌과 닿아있다는 설명이다.

반면에 프랑스 남부 제라르 베르트랑(Gerard Bertrand)에서 생산하는 '꼬뜨 로즈(cote des roses)' 시리즈는 대놓고 바닥이 독특한 와인이다. 이름처럼 바닥이 장미 꽃을 형상화하고 있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로제 와인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나오는 모든 와인의 바닥은 마찬가지다.

꼬뜨 로즈 바닥과 병 모양 / 꼬뜨 로즈 홈페이지 갈무리
꼬뜨 로즈 바닥과 병 모양 / 꼬뜨 로즈 홈페이지 갈무리

또 한 가지 독특한 것은 일반적인 와인과 다르게 코르크 마개 대신 유리 마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투명한 병에 금박 장미 문양이 있어 산뜻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디자인에서 알 수 있듯 부부나 연인의 기념일 등에 사용되는데 인기가 높다.

그렇다고 와인으로써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꼬뜨 로즈 로제 2018(Cote des Roses rosé 2018)'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90점을 획득하며 최고의 로제 와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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