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일어났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만감(萬感)을 느껴본다. [편집자주]

편지 /사진=픽사베이

'친서(親書)'는 직접 쓴 편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언론에서는 한나라의 원수가 다른 나라의 원수에게 보내는 공식적 서한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친서는 대부분의 경우 친교와 우호, 관계 개선의 의지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그래서 친서를 주고받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 내용에 따라 관계된 산업에 좋은 신호로 작용을 한다.

3~4년 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 남북경협 관련주들은 기대감을 등에 업고 큰 상승을 보였었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큰 실망감과 함께 수개월 동안 하락세를 이어갔는데 간헐적으로 전해지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친서 전달 소식은 분위기 전환을 가져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2019년 4월, 하노이 결렬 이후 처음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친서 형태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은 대화 재개의 가능성으로 해석하고 반응했다. 그해 6월에는 김정은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남북경협 섹터주가 일제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9년 6월 북한 노동신문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왔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읽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사진=북한 노동신문

남북경협 섹터에 속하는 종목은 HTS 기준으로 대략 30여 개로 꼽힌다. 섹터의 구성은 건설과 철도, 에너지와 같은 인프라 관련 종목을 필두로 농업·의료·패션 산업 등을 영위하는 종목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를 통해 해석해 보자면 친서가 계약서와 같은 확정된 무언가는 아니지만 결코 가벼운 편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영인의 편지가 직접적으로 종목과 시장에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지난 2015년 8월 중국발 쇼크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졌을 때 "애플은 중국에서 선전하고 있다"라는 취지의 편지(이메일)를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보냈고, 편지의 내용이 전해지자 급락하던 애플의 주가가 진정세를 보인 바 있다.

그런가 하면 2019년 팀 쿡이 투자자에게 보낸 편지는 '애플 쇼크'라고 불릴 만큼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준 반대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편지를 통해 팀 쿡은 당시 한창이던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인한 중국 경제의 둔화를 지적하면서 이에 따라 애플의 분기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이 편지의 내용이 공개되자 애플은 시간 외 거래에서 7%가량 떨어지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관련 종목들도 큰 하락을 면치 못했다.

선거철이 되면 특정 정치인 관련주라고 테마를 형성해서 움직이는 일이 매우 흔하다. 그런데 지난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서는 한 옥중 정치인의 편지가 '짧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2020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낭독 기자회견을 끝내고 취재진들에게 서신을 공개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2020년 3월 4일 박 씨의 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친필 옥중 서신을 공개했고, 거기에는 소위 '보수 분열에 대한 우려와 보수의 단합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주목할 것은 이 소식이 전해진 시점이 주식시장의 정규 거래가 종료되고 시간 외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편지 소식이 전해졌던 늦은 오후, 당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테마주로 분류되던 한창제지가 급상승 분위기를 연출했다. 진행 중이던 시간 외 거래를 당일 종가 3905원 보다 8.19% 상승한 4225원으로 마치면서 박 씨의 옥중편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반기는 모습을 보였던 것. 그렇다면 다음날은 어떻게 됐을까?

3월 5일 한창제지는 4250원으로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결국 종가는 전날과 마찬가지인 3905원으로 장을 마쳤다. 상식적으론 이해하기 어렵고 의도된 움직임의 여부도 확언할 수 없는 변동이지만 아무튼 시장이 매긴 편지의 가격, 반나절 치였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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