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의 녹청은 추가 부식을 막아주는 보호 장벽
녹청의 빛깔과 분위기는 다양한 마감재와 장식품으로 인기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건축물에서 미적·기능적 역할
항균·친환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부응하는 재료

국회의사당 돔, 자유의 여신상, 한남동의 한 고급빌라 지붕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구리(Cu)로 되어있다는 사실.

사진=픽사베이, 헤이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왼쪽부터 시계방향) 국회의사당, 자유의 여신상, 한남더힐/사진=픽사베이, 헤이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포인트경제CG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녹청(verdigris)은 구리가 시간 지남에 따라 산화한 결과로 일반적인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건조한 기후에서는 연한 갈색을 띤다) 주목할 것은 이것이 단순히 녹이 슨 것이 아니라 구리의 수명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 추가 부식을 지연하는 일종의 보호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보통 구리로 된 지붕의 경우 수명을 100년 이상으로 평가하는데 이 같은 원리가 숨어있다.

구리는 납보다 밀도는 작고 인장 강도는 훨씬 크면서 무게는 가볍다. 그래서 지지해야 하는 하중이 덜하다. 또한 납보다 훨씬 높은 녹는점으로 내화성에도 강점을 보이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한 중요한 구조물에 더욱 적합하다. 이 같은 장점들과 더불어 수명을 고려하면 구리가 싼 재료가 아님에도 가성비가 높은 지붕 재료라고 불리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인공적인 녹청 생성 실험(구리 기반 합금에 인공 녹청 형성: 염화물 및 황산염 유도 부식 과정) /논문 동료 검토 플랫폼 sciencedirect 갈무리

산화한 구리의 청록색은 은은한 빛깔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선호도가 높다. 그래서 일부러 구리의 산화를 촉진하는 방식을 적용하기도 하는데 비단 지붕뿐만이 아니다. 건축 관계자들과 디자이너들은 도금된 구리 제품의 산화 과정을 가속화시켜 자연스러운 청록색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다양한 마감재와 장식품 등을 개발 및 적용하고 있다.

(왼쪽부터) 녹청 욕조, 장식용 골동품 접시, 램프갓 /indiaMART, amazon, vintage-electrical 갈무리

구리가 건축과 예술 작품의 소재로써 인기가 높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구리 펜던트가 기원전 8700년 이라크 북부에서 발견된 것을 비롯, 이집트 카르낙(karnak)에 있는 고대 아문레(Amun-Re)신전의 문은 구리 못으로 장식되어 있고,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에 세워진 로하 마하 파야(Loha Maha Paya) 사원의 지붕도 구리를 사용했다. 유럽의 수많은 성과 성당의 첨탑·지붕·동상에 구리가 애용된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도미노 팜스 오피스 파크(왼쪽)와 베를린 대성당(오른쪽) /DTE Energy, prestigeroofing 갈무리

현대에 와서도 미적·기능적 가치를 인정받아 인상적인 건물들의 건축이 이어지고 있다. 도미노 피자의 본사가 입주해있는 미국 미시간주의 '도미노 팜스 오피스 파크(Domino's Farms office park)'는 약 900m에 이르는 구리 지붕을 가지고 있고,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Wales Millenium Centre)의 거대한 돔은 산화구리로 처리된 강철을 활용한 인상적인 외관으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웨일즈 밀레니엄 센터(이 돔은 청동색을 유지하기 위해 산화구리로 처리된 강철을 사용했다) /prestigeroofing 갈무리

구리의 건축 속 활용은 시대적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오상근 교수는 지난해 5월 발표한 '감염병 예방과 위생을 고려한 건축용 신소재 및 부품의 응용'에서 "금번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가 일상 접하는 건축공간에서의 사용 소재(마감재, 부자재, 부품 등)의 역할에 있어서 위생과 감염병 예방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추가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라고 밝히며 구리의 추가적인 기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미 건축 신소재로써 구리시트를 이용한 인공지반 녹화층에서의 방수방근재료가 건설신기술로써 실용화되고 있다."라는 설명과 함께 방균(항균) 필름재(코팅재)로 활용되는 구리 성분의 항균작용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을 건축 소재 차원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주목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구리의 친환경 재료로서의 매력이 높은 점 역시 중요한 장점이다. 구리는 금속 중에 가장 높은 재활용률을 자랑하는데 지붕이나 외장재로 사용된 이후에도 그냥 버려지지 않고 회수되어 재활용할 수 있다.

구리 재활용 /copper recycling company 갈무리

건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부터 급등세를 보인 구리 가격의 상승은 주목할 만한 화제다. 구리가 전기차와 풍력 등 친환경 신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에서 원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수요가 강세를 보여 나타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친환경·ESG 경영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구리의 밀접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포인트경제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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