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말 기준 산업재해 전체 사망자 수 574명, 질병 재해자수 지난해 기준 4377명
2007년 삼성반도체 공장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 등
2015년 형광등 제조설비...수은 노출 중독된 하청노동자 20여 명
2016년 삼성·LG 휴대폰 부품 하청공장 불법 파견...메탄올 중독 사망 19세 청년
지난 27일 문송면, 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3주기 ‘2021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

문송면이 2개월여 간 일한 협성계공(좌측상단), 수은중독을 인정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진단서(우측), 고 문송면 산업재해 노동자장(좌측하단) /사진=일과건강

15세  소년 문송면 군이 온도계 제조회사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고, 같은 해 원진레이온 노동자 915명이 인체에 치명적인 이황화탄소에 중독되어 현재까지 230명이 사망한 것은 33년  전이다.

급성중독과 신장손장, 신경계 증상 등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수은(mercury)은 미나마타 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황화탄소(Carbon disulfide)는 독일의 화학자가 발견한 화합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신경 독가스다.

이황화탄소이황화탄소(Carbon disulfide) 정보

무서운 옛날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노동자들의 유해화학물질 관련 직업병과 사망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2021년 3월말 기준 산업재해 전체 사망자 수는 574명, 질병 재해자수는 2020년 3월 기준 437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7명이 증가했다.

▲2007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故) 황유미를 비롯한 수많은 반도체 관련 직업병과 사망, ▲2015년 형광등 제조설비 철거과정 작업에서 수은에 노출되어 중독된 하청노동자 20여 명, ▲2016년 삼성과 LG 휴대폰 부품 하청공장에 불법 파견되어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사망한 19세 청년 등 유해물질과 관련한 노동자들의 일터에서의 고통과 사망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에 따르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이달 초까지 344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1년에 90만 명 이상이 일하는 공간에서 유해화학물질 때문에 생기는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추정되고 있다.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러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꼭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면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위험한 물질인지의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어야 하고, 이러한 정보를 법과 규제로 만들고 현실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유해화학물질의 규제와 관련된 역사에서 유해성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서 켜켜이 쌓여온게 사실이다. 물질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해 얻을 수 있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다 실상 유해성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규제화되기까지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국화학학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세계에서 1억3천만 종의 화학물질이 개발되었으며, 이 중에 독성 평가를 거친 물질은 3천 종 정도이다. 또 독성 재평가가 필요한 물질은 1만 종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4만 종의 화학물질도 기본적으로 독성을 파악하고 있는 물질이 15%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정보에 더 취약할 수 있고,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 어떤 독성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2일 타워크레인 작업 중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추모 사전 결의대회가 열린 2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한 신축건설 현장 앞 /사진=뉴시스
지난 22일 산재 사망 노동자에 대한 추모 사전 결의대회가 열린 2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한 신축건설 현장 앞 /사진=뉴시스

이러한 점을 들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공유정옥은 참여연대의 '유해물질과 노동자 건강'에서 "전 세계 공장들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독성을 실험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실제 작업장에 비치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발암성이나 생식독성 등에 대하여 '자료없음'이라고 명시된 물질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작업장에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2021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제사상에 고 문송면 군의 사진이 높여있다)/사진=일과건강

지난 27일 오전 모란공원에서는 문송면, 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3주기 ‘2021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관계자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인식해 새로운 미래를 이어갈 기회를 갖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장례위원이자 원진직업병관리재단 김은혜 이사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직업병 인정과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법을 만들어 내고 개정하는 운동까지 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뉴스에 나오는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있다”며 “또다시 노동자가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견고한 연대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4월 고용노동부는 신규 화학물질 27종의 명칭, 유해성, 위험성, 노동자 건강장해 예방 조치사항 등을 공표했다고 밝혔다. 해당 신규 화학물질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제조·수입된 80종 가운데 유해성·위험성이 확인된 27종으로 복통, 구토, 어지럼증 및 식도나 장기 손상 등 급성 중독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B-9-안트라센보로닉 산', 피부 접촉 시 자극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4-비닐사이클로헥센 산화물' 등이 포함됐다.

포인트경제 유민정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포인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