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앞세운 이미지 세탁 '스포츠 워싱'에 나선 사우디
지난해 호날두를 시작으로 유명 축구 선수들에게 파격적인 제안 이어가
리오넬 메시, 사우디 관광부와 320억 원 수준의 홍보 계약
PIF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2년도 안된 LIV가 PGA 투어와 합병.. 사실상 승리
WWE·복싱 타이틀매치·F1·e스포츠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개최
대규모 국제 대회 유치 확정 및 진행 중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란 국가나 조직이 스포츠를 앞세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을 세탁하려는 것을 말한다. 최근 이 스포츠 워싱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그리고 이들은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축구선수 이름값 얼마면 돼?

지난해 사우디프로페셔널리그(SPL) 클럽 '알 나스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비록 호날두의 기량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경쟁심과 상품성을 생각해 보면 SPL로의 이적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상황. 하지만 연봉이 2억 달러(약 2천 600억 원)라는 소식에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이해한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22-23시즌이 끝난 유럽축구리그 스타들을 향한 사우디의 손길은 계속되고 있다.

일단 발롱도르 수상 경력이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벤제마는 '알 이티하드'와 계약하며 호날두와 같은 2억 달러의 연봉을 수령할 것으로 알려졌고, 첼시의 은골로 캉테 역시 같은 팀으로 이적하며 4년 총액 1억 달러(약 1300억 원)의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루카 모드리치·세르히오 부스케츠·로멜루 루카쿠·손흥민 등 유명 선수들에 대한 영입 제안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고, 심지어 주제 무리뉴 감독에게 1억 2천만 유로(약 1680억 원)의 제안을 했다는 해외매체의 보도도 나왔다.

'리오넬 메시,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된 계약' 기사 / 뉴욕타임스 갈무리
'리오넬 메시,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된 계약' 기사 / 뉴욕타임스 갈무리

이 와중에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리오넬 메시와 사우디 정부가 맺은 계약서를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SPL이 아닌 미국메이저리그사커(MLS) 인터 마이애미 CF로 이적을 결정한 메시지만, 사우디 관광부와의 계약으로 3년간 최대 2500만 달러(약 320억 원)를 받을 수 있는 계약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계약 내용에는 메시가 해마다 최소 한 번 이상 사우디에 5일 이상의 가족여행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으면서도, 관광비용과 호텔 숙박료는 전액 사우디 정부가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메시가 자신의 SNS 계정에 사우디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올리거나 관광 캠페인 행사, 자선 자업 등에 참여할 때도 돈을 지급받는 형식이다. 물론 사우디의 평판을 훼손하는 발언은 할 수 없다.

국부펀드(PIF) 자금으로 영국프리미어리그(EPL) 구단 뉴캐슬을 인수하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전례가 없는 규모의 돈을 풀어 SPL로 이끌며, 국가 기관이 나서서 스포츠 스타를 섭외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 축구팬들은 놀라움을 넘어서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골프 시장을 합병으로 집어삼키다

얼마 전 미국 PGA 투어와 사우디가 후원하는 리브(LIV) 골프가 합병을 발표했다. 고작 2021년 10월에 출범한 LIV가 세계 프로 골프를 선도하는 PGA 투어와 각종 비판과 소송을 벌여오다가 돌연 합병하는 모습에 골프 팬들과 선수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LIV 대회 / LIVGOLF 홈페이지 갈무리
LIV 대회 / LIVGOLF 홈페이지 갈무리

먼저 LIV는 PIF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작부터 세계적인 선수들과 계약을 맺고 높은 상금을 제시하며 PGA를 위협했다. 실제로 필 미켈슨·더스틴 존슨·세르히오 가르시아·브라이슨 디샘보 등 PGA 투어 톱랭커들이 리브 골프 측으로 넘어갔는데, 디샘보가 리브 측에 합류하는 조건으로 받은 계약금이 2억 달러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PGA 투어에서 82승을 거두며 받은 총상금이 1억 2100만 달러(약 1560억 원) 임을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LIV의 대회가 전형적인 4일 72홀 방식이 아닌 3일 54홀 방식이고, 단체전 상금과 컷오프가 없어 꼴찌를 하더라도 보장되는 상금 등이 있는 점은 선수들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LIV 대회의 우승이 세계 랭킹 포인트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점과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전통적 가치 등을 내세워 반대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일단 흐름은 LIV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LIV 측이 PGA 투어를 상대로 독과점 금지 소송을 제기한 것도 그동안 진행 중이었는데 여기에도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역시 PGA 투어가 자금력으로 상대가 될 수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합병이 결정되다 보니 LIV, 즉 사우디의 승리로 해석하는 쪽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보다 합병으로 새로 출범하는 법인에 대해 PIF가 독점적 투자자가 되고, 이사회 의장에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가 결정됐다는 점을 보면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미국 법무부가 합병에 대한 독과점 여부를 조사하기로 나섰고, 미국 의회에서는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향후 진행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라면 무엇이든

사우디의 상업도시 제다에서는 지난 2018년 미국 프로레슬링(WWE)의 대표적인 이벤트 '로열럼블'이 열렸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대전료가 2000억 원이 넘는 올렉산드르 우시크와 앤서니 조슈아의 헤비급 타이틀 매치가 펼쳐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코니쉬 서킷 / F1 홈페이지 갈무리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코니쉬 서킷 / F1 홈페이지 갈무리

PIF가 주도적으로 나서 2021년부터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인 포뮬러1(F1) 그랑프리 개최지 대열에도 합류했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이벤트 '게이머즈(Gamers)8'을 개최한다. 스페인 슈퍼컵과 피파 클럽 월드컵도 유치했는데, 자국 내 시장과 상관없이 종목을 가리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들이다.

대규모 국제 대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우디는 2027년 아시안컵·2029년 동계아시안게임·2034년 하계아시안게임을 이미 유치했으며, 2026년 여자아시안컵·2030년 월드컵·2036년 하계올림픽을 열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파격적인 추진에도 자금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의도에 대한 의구심과 위화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스포츠 워싱이라고 지목되는데 합당한 이유들도 분명하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저작권자 © 포인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