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일어났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만감(萬感)을 느껴본다. [편집자주]

올해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은 모집금액 기준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95년 이후 최악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월스트트저널(WSJ)과 금융 정보 업체 딜로직(Dealogic)은 올해 IPO 실적이 예년 수준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WSJ는 이 같은 IPO 시장의 부진을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빗대며 당시는 연말로 가면서 시장이 살아났지만 올해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더욱 암울한 우려를 더하기도 했다.

IPO 시장은 20년 만에 최악의 해에 직면했다. '정말 삼키기 힘든 알약' / WSJ 홈페이지 갈무리
IPO 시장은 20년 만에 최악의 해에 직면했다. '정말 삼키기 힘든 알약' / WSJ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9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모건스탠리 자료를 인용하며 9월 21일 기준으로 미 뉴욕 주식시장에서 자산 5000만 달러(약 710억 원) 이상의 테크기업 중 단 한 곳도 IPO를 하지 않은 238일째를 맞이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의 최장 기록을 넘어서는 가뭄이라고 상황을 평가했다.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기업의 주식과 경영내용을 공개하는 IPO는 대규모 자금조달이라는 가장 큰 목적과 함께 기업의 홍보 및 평판, 가치 상승 등을 달성하는 계기가 된다. 경영권 분산 우려와 IPO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무릅써서라도 얻는 이득이 큰 만큼 기업의 레벨업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시장의 관심이 중요하다.

문제는 최근의 시장 상황이 IPO를 하려는 기업들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주식시장보다 규모가 훨씬 큰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면서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하반기 IPO 최대어로 기대를 모았던 현대오일뱅크의 IPO 철회는 이런 시장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2년과 2019년에 상장을 중도 철회했던 만큼 절치부심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고유가 장기화로 특수를 누리는 상황임에도 현대오일뱅크는 IPO를 철회했다. 회사는 우수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시장 상황을 철회 이유로 설명한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공모시장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쏘카의 약세와 밀리의 서재 청약일정 연기도 지금의 시장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국내 1위 카셰어링 플랫폼 업체인 쏘카는 공모가 희망밴드를 3만 4000~4만 5000원으로 제시했었지만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 2만 8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하고 상장했으나 현재 1만 6250원(28일 종가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 측은 일정 연기가 증권신고서 정정에 따른 일정 변동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증권신고서에는 글로벌 거시경제 및 증시 변동의 위험과 더불어 경기 변동에 따른 수요 감소 등을 투자 위험요소로 꼽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관심을 받는 회사가 마켓컬리다. 컬리는 지난 3월 유가증권 시장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고 8월 22일 심사를 통과했다. 예비심사를 통과하게 되면 6개월 이내, 즉 내년 2월까지 상장을 마쳐야 한다.

김슬아 컬리 대표 /사진=중소벤처기업부, 뉴시스

문제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프리 IPO(기업이 상장을 약속하고 일정 지분을 투자자에게 매각해서 자금 유치하는 방식)에서 4조 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 시장에서 평가하는 기업 가치는 1조 원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하락에는 컬리의 시장 지배력이 특별하지 않으며 수익성도 그다지 탁월하지 않다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 식품군 배송에 집중되어 있는 사업 모델과 강력한 경쟁자들의 존재도 컬리의 극복 과제이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컬리 측은 꾸준히 상장 철회를 부정하지만 시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규모가 크거나 시장의 관심이 몰리는 종목을 최대어(最大魚)·대어(大魚)와 같이 물고기에 비유를 한다. 그리고 큰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서는 풍부한 수량과 영양분이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시장은 가뭄이 진행되는 저수지인지도 모른다. 크기보다 현명한 물고기가 살아남는 시절 말이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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