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증류소와 창고를 지키는 역할을 해온 거위
와인 포도밭에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는데 대표적인 역할
핀란드에서는 거위 배설물을 이용한 맥주 선보여

매력있는 싱글몰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블렌디드 위스키 발렌타인(Ballantine's)의 핵심 원주를 담당하는 글렌버기(Glenburgie) 증류소에서 거위는 상징적이다.

아무래도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증류소에는 과거부터 침입자가 발생하기 쉬웠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한 대책들이 고민이었는데 대부분 개가 그 역할을 했지만 글렌버기의 선택은 거위였던 것.

거위는 지능이 높고 배타성이 강해서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떼로 몰려가서 큰 소리로 울고 가까이 다가올 경우에는 실제로 공격까지 하기 때문에 경비 역할로 제격이다. 과거 로마군에서도 거위가 경비용으로 쓰인 기록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도 '거위는 능히 도둑을 놀라게 하고, 또 능히 뱀을 물리친다.'라고 인용되어 있기도 하다.

발렌타인 광고에 등장한 거위 /scotchwhisky 갈무리

거위는 경비 역할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잡초와 벌레 제거는 물론 거위알까지 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한때 100마리가 넘는 거위가 있었던 발렌타인의 덤벅(Dumbuck) 창고에는 현재 거위가 사라졌지만 글렌버기 증류소에는 여전히 거위가 남아서 역할을 맡고 있다.

유럽과 남미 지역의 포도밭에서 거위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와인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친환경 농법이 중요해지면서 밭을 관리하는데 거위의 먹이활동과 습성이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탄소 배출 0% 인증(Carbon Neutral)'을 받은 칠레의 코노수르(Cono Sur) 와이너리의 포도밭에는 1000마리 이상의 거위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이탈리아 칸티나 디 필리포(Cantina di Filippo)에 있는 와이너리에서는 '혼농임업(混農林業, agroforestry)'의 개념을 도입하며 포도밭에 거위를 풀어놓았다.

혼농임업이란 농업과 임업을 함께하며 축산까지 도입해서 식량과 자원 등을 생산하고 토양보전을 실천해서 지속농업을 가능하게 하는 복합영농의 형태를 말한다. 디 필리포 포도밭의 경우 포도 생산을 촉진하고 거위 고기를 얻을 수 있으며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효과를 함께 추구한다는 설명이다.

수의학 관련 국제 저널인 〈Animals〉에 실린 이탈리아 페루자 대학 농업환경식품과학부의 연구에 따르면 포도밭에 거위를 풀어놓을 경우 토양에 손상을 주지 않고 포도밭의 제초와 비료 제공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바이오매스의 양과 효율성을 증가시켜 토양 품질 개선 효과도 발휘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포도밭에서 자란 거위: 흙, 풀, 동물의 상호작용 /미국 국립보건원 갈무리

논문을 보면 거위가 풀을 뜯어 먹게 되면서 토양의 구리(Cu) 함량을 감소시키는데 거위의 체내에는 그다지 축적되지 않고 대조군과의 비교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아 고기를 소비하는데도 문제가 없다. 연구팀은 결론에서 포도밭과 거위의 상생이 생산성 증가와 환경 지속가능성이 결합된 좋은 예가 된다고 적고 있다.

핀란드 남부에 있는 도시 라티(Lahti)는 '2021년 유로피안 그린 캐피탈(European Green Capital 2021)’로 선정된 친환경 도시다. 이곳은 물이 깨끗해서 맥주와 위스키 양조장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앤트브루(Ant Brew) 양조장에서는 거위 배설물을 이용해서 만든 맥주 ‘웨스티드 포텐셜 임페리얼 스타우트(Wasted Potential Imperial Stout)’를 출시하기도 했다.

웨스티드 포텐셜 임페리얼 스타우트(Wasted Potential Imperial Stout) 맥주 /trendhunter 갈무리

그동안 수제 맥주에 야생 허브나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하는 방식 등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지만 거위 배설물이라는 충격은 꽤 남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물론 식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처리를 거치며, 이를 통해 스타우트 특유의 맛과 향을 내는 몰트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무엇보다 사용되는 거위 배설물은 라티 지역의 공원에서 가져온 것으로 공원은 깨끗해지면서 즐길 수 있는 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는 분명하다.

라티 유로피안 그린 캐피탈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사라 피스파넨(Saara Piispanen)은 "우리의 환경과 순환 경제는 우리에게 중요하며, 우리는 이러한 주제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논의하고 싶다"라고 취지를 설명한다.

포인트경제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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