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집단 피부질환 발병 원인, 새로 개발한 페인트 속 '비스페놀 F 에폭시 수지'
KCC와 현대중공업 등이 새로 개발한 무용제 도료
새로운 도료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피부 과민성 문제 간과
사용과정서 유해성 교육·적정 보호구 지급도 적시 이뤄지지 않아
환경부, 2019년 무용제 도료 사용 권장 내용의 개정안 입법 예고해

현대중공업 갈무리

지난해 9월부터 현대중공업에서 도장작업을 하던 노동자들 사이에서 집단 피부질환이 발생했다. 이들은 새로 개발된 무용제 도료를 사용했는데, 무용제 도료는 페인트 분야의 친환경 기술 개발로 선박 도장 작업 시 화재 사고 위험이 적고 대기오염과 환경오염을 줄이는 친환경 제품을 말한다.

같은 해 11월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해당 무용제 도료 사용 중지와 역학조사를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3일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 도장 노동자들의 집단 피부질환과 관련해 역학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친환경 제품인데 무엇 때문에 집단 피부질환이 발생한 걸까.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4월부터 현대중공업과 KCC가 공동개발한 휘발성 없는 친환경 무용제 도료로 이를 사용한 이후부터 노동자들에게 피부질환이 생겼다.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와 해양도장 노동자 등 23명에게 붉은 반점과 물집이 생기는 피부발진이 생겼다고 밝혔다.

또 대기환경에 친환경이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기존과 다른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물질이며, 위험성에 대한 사전 평가나 안전보건 조치도 없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용제 도료 취급 도장작업자에 대한 임시건강진단 결과

결국 올해 1월부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을 통해 원인 조사를 해온 고용노동부는 기존에 사용하던 도료와 새로 사용한 무용제 도료를 비교한 결과, 무용제 도료를 개발하면서 휘발성 유기화합물 함량은 낮아졌지만 새로운 과민성 물질들 대체되어 피부질환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 계열 조선소 3개소를 포함한 1080명의 노동자에 대한 임시건강진단 결과 피부 관련 직업병 유소견 55명(5.1%), 관찰이 필요한 사람은 177명(16.4%)으로 확인됐다.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55명 중 53명이 현대 계열 조선 3사 근로자였다. 

기존 도료에는 주로 비스페놀(Bisphenol) A형 에폭시 수지가 사용되었고, 새로 개발된 무용제 도료에는 비스페놀 F형 에폭시 수지가 사용됐다. 둘 다 피부과민성 물질이다. 그러나 비스페놀 F형 에폭시 수지는 A형보다 분자량이 적어 피부과민성이 더 높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비스페놀 F 에폭시 수지는 ▲피부 부식성/자극성 2, ▲심한 눈 손상/자극성 2, ▲피부 과민성 1로 분류되어 있다.

용제형/무용제 도료(주제+경화제) 과민성지수 평가 결과 /환경부 등 관계부처 합동

두 도료의 과민성지수 평가 결과를 보면 기존 용제형 도료의 평균 과민성지수(374)보다 무용제 도료의 지수(626)가 2배 가까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이런 도료를 사용한 걸까. 개발한 도료를 사용하기 전에 위험성 검토 조차 안 했나.

개발 사용 단계부터 사전 위험성 검토 부족

지난해 KCC는 현대중공업과 한구조선해양과 공동 개발한 친환경 무용제 도료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용제가 들어있지 않아 획기적으로 VOC 배출량을 낮췄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자가 작업 중 질식이나 폭발 등 화재 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으며, 환경오염 방지에 기여한다고 했다. 또한 환경부는 2019년 무용제 도료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의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도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선박 도장 작업 시 친환경 무용제 도료 사용 비율을 2020년 2%에서 2024년까지 60%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2일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무용제 도료에 포함된 과민성(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질) 물질이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개발 사용 단계에서 사전 위험성 검토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에 안전보건조치 명령을 2일 내렸으며, 이행실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새로 개발한 도료에 대한 사용 전 환경부를 비롯한 관계부처에서 제대로 된 확인과 검수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미 노동자들에게 집단으로 피부질환 등이 발생한 이후 '뒷북 행정'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포인트경제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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