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깨고자 하는 운동
정부의 탈시설 공약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시설은 증가 추세
폐쇄하는 것이 마땅한 수용시설들... 그러나 행정당국은 관련 절차를 만들지 않아

“시설? 죽어서 가는 무덤이라면 가겠어"

김미경씨는 한 시설에서 30년을 살았고, 이제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산다. 이성 교제나 결혼에는 무심한 듯하고 그저 ‘돈’을 모아 지금처럼만 '편안하게, 그럭저럭…' 살고 싶단다. 비록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결코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녀.

2010년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김미경 씨. ⓒ고은경
2010년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김미경 씨. ⓒ고은경

"내 맘대로 결정하고 병원 가고 싶을때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있을대 만나고, 내 삶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게 그게 가장 좋지. 잠깐 밖에 나가는 것도 일일히 다 보고고해야 되고, 뭐 하나를 해도 꼬치꼬치 캐묻고 한소리하고 자기들이 뭔데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하는 건지. 물론 시설 자체는 편하지. 근데 단지 그뿐이야. 시설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편하다는 거 빼면 나머지가 다 싫어. 죽어서 가는 무덤이라면 내가 가겠어. 하지만 살아있는 한 다시는 가지 않을거야"
[출처=장애인 인권 발바닥 행동]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인 탈시설 논쟁이 이슈화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라고 한다. 

'장애인 인권 발바닥 행동'에 따르면 장애인단체 및 인권단체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는 것을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정부는 왜 시설정책으로만 일관하면서 장애인 지원정책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탈시설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탈시설운동은 장애인이 무조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깨고자 하는 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설로 가서 자원봉사를 하지만 왜 장애인들이 시설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깊지 않을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한 오랜 통념으로 장애인은 능력 없다고, 보호해야 한다고, 산 좋고 물 좋은 외진 곳에서 안 보이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오랜 통념을 깨고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살자는 운동이 탈시설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장애인 인권 발바닥 행동]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장애인 탈 시설 자립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행정당국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의 명령에 따라 행정당국이 반드시 만들어야할 관련 시행규칙조차 만들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장애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탈 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약속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장애인 수용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을 지역사회에 포용하는 ‘탈 시설’ 정책을 강하게 추진해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장애인 수용시설을 수 십년 동안 급격히 늘려왔으며, 행정당국은 ‘탈 시설 자립지원’이 국정과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용시설은 최근 몇 년간에도 지속적인 증가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형시설일수록 인권침해의 온상이 되기 쉬운데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거주인원이 30인 이상 되는 시설 수가 383개나 되며 거주인원 100명 이상의 대규모 시설도 25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보건복지부]
장애인 복지시설 수 변동표 [자료 출처=보건복지부]

탈 시설 자립지원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연간 44억원에 불과하고, 제주도와 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범사업의 예산도 각 9억원 미만에 불과하다. 

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 지원 예산 [자료 출처=보건복지부]

매년 장애인 수용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2019.9.)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한 사건 중 장애인 학대가 분명하다고 판정된 사건은 195건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에서는 시설을 폐쇄하는 것이 마땅한 중범죄가 상습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문제는 탈 시설 자립정책의 시행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장애인 수용시설을 폐쇄한 다음 거주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복귀를 도울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행정당국은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시설 폐쇄명령을 내리고 거주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탈 시설 자립 지원을 시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보건복지부는 법의 위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시행규칙이 없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 제40조와 제38조를 보면, 시설폐쇄 명령을 내린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은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거주 장애인에 대해 권익보호 조치를 하고 자립을 지원하도록 되어있다. 이는 관련절차를 보건복지부의 시행규칙으로 만들라는 법의 명령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오랫동안 관련 시행규칙을 만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탈 시설 자립지원 가이드 [이미지 출처=누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편, 지난 4일 진선미 국회의원은 2019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행정당국이 장애인 수용시설을 폐쇄할 때는 자립지원 등 장애인에 대한 권익보호조치를 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고, 이를 어기면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해지도록 되어있으나, 보건복지부령이 없어 법이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최근에 이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는데 보고받았는가?” 라고 질의하였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대해 “보고 받았다. 아주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보건복지부에 내부규칙 자체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저희들이 곧 마련해서 곧 정비하겠다”라고 답변하였다. 

인권침해가 발행한 시설들을 폐쇄하고 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을 도와주는 정책들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포인트경제 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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